#1 영화 귀향
'귀향'입니다. 1940년 일본군위안부에 끌려갔던 강일출 할머니의 실화를 소재로 만든 영화입니다. 2002년에 처음 기획된 시나리오지만 실제 제작부터 개봉까지 10여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2016년 2월 24일 개봉했고 <검사외전>의 스크린 독점 논란이 이는 가운데 개봉해 초기 상영관 수는 굉장히 적었으나 이후 대형 영화관에서 여론을 의식해 개봉관을 대폭 확충, 2016년 삼일절 기준으로 백만을 넘겼습니다. 2015년 2월 TV드라마로 제작돼 같은 소재를 다뤘던 '눈길'이 평균 시청률 5%대를 기록했던 것까지 생각해보면 이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 쟁점으로 점점 자리 잡아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2 기억 그리고 폭력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의 행복은 그리 오래 묘사되지 않습니다. 조금 상투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등장인물들은 91년의 '현재'에서나 1940년 일제강점 말기의 '과거'에나 순식간에 지옥으로 빨려들어갑니다. 1940년의 정민은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가 되고, 91년의 은경은 강도에 의한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성적으로 범해진 다음(암시만 됩니다) 무당을 찾고 신기가 왔다며 무녀가 됩니다.
연출은 여기서부터 거칠어집니다. 1940년의 소녀들은 시종일관 폭행당하고 강간당하고 살해당합니다. 91년의 무녀 은경은 일종의 환각(트랜스) 상태에서 그들과 연결되며 그들이 당한 심리적 신체적 폭력을 뒤집어씁니다. 이 너덜너덜해진 감정의 무더기는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와 관객을 때립니다. 여성 관객 비중이 굉장히 높았던 영화인데 대다수 여성들은 그 감정의 격랑을 견디지 못하거나 무너지거나 힘들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방법이 옳았는지는 후술하겠습니다. 혹자는 이를 '기억 폭행'이라고 했습니다.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쉼없이 여과없이 자극적인 장면을 계속 보여줍니다.
#3 아쉬움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도 많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느껴지는 감정을 화면의 색감에 빗대 많이 판단하는 편인데 2시간 정도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80% 정도 장면이 붉었습니다. 편안하다고 생각되는 파란색, 흰색 등 색은 초반부와 후반부에만 느껴집니다. 이를테면 좀 과했어요. 분명히 되새길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은 영화인데, 이제 좀 쉬엄쉬엄 걸어가도 될 듯한데 앉을 벤치가 없고 뙤약볕이 계속되는 느낌이랄까요.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여성들에게는 굉장히 가혹한 영화입니다. 여성이라는 부분에서 심리적으로 가까워지는 데다. 연민, 동지애 같은 감정이 뒤섞이면 정신적 탈진 상태가 일어나기 쉬워요.
물론 이런 자극적인 연출이 영화의 흥행에는 꽤 도움이 됐을 거라 생각해요. 대중은 심각한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거든요. 위안부 할머니 문제가 중요한 걸 알지만 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2시간 틀어준다면 선뜻 나서서 참고 볼 사람은 많지 않아요. 미안하지만 그런 영화로는 백만명을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영화는 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한 대중의 감정에 방아쇠를 당겼고 영화관에서 실컷 함께 울며 그 기억 폭력의 감정을 공유한 사람들은 이 영화를 떠올리며 좀 더 깊은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극은 굉장히 과했다는 겁니다. 2015년의 드라마 '눈길'은 여유를 갖고 위안소 내부에서 소녀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면서 쉴 여지를 주려고 노력했는데 그런 부분이 많이 보이지 않아 아쉽습니다.
#4 다만
하지만(다만)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가 이 시국에 반드시 필요한 영화라는 데는 격하게 동의합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우리는 너무 많이 울었고, 너무 많이 졌고, 너무 팍팍하게 살았고, 지나치게 감정의 끈을 조이며 살아왔어요. 영화에서 보여주는 굿판은 그래서 소녀들에 대한 위로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한판 살풀이이기도 합니다. 실컷 울고 나면 또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생기겠죠. 힘냅시다. 이만 글 마치고 다음에 또 더 나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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