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노래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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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에 부쳐- 부치지 못한 글 스케치




응답할까 2015

 

사라져가는 것들의 2015

 

 

 

 

응답하라시리즈의 인기가 뜨겁다. 이번에는 응답하라 ‘1988’이다. 작중 등장하는 진주는 드라마 설정상 1983년생이며 나는 1986년생이다. 진주보다 어린 내가 응답하라 1988을 보며 그 시대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렇다고 드라마 평론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보다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에 대한 이야기이자 또 다른 응답에 대한 단상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2011년 보따리를 싸들고 대구에서 상경했다. 지방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했지만 임용시험에 실패했고, 수험 기간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글을 다루는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출판사 입사를 꿈꾸며 홍대 X대 고시원 앞 언덕길을 메모한 지도를 보며 오르던 그 여름이 아직도 생각난다. 나의 첫 서울은 마포구 홍대였다. 무척이나 좁고 덥고 불편했던 방. 나는 그 고시원에서 인생 처음으로 라면이 싫어졌다. 보름 내내 라면만 먹어봐라.

 

 

 

그러나 홍대 생활은 즐거운 점도 많았다. 밤마다 창밖을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에 잠 못 이루기 일쑤였지만, 길에 맥주 한 캔 들고 나가면 항상 누군가는 기타를 치고 있었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놀이터에 가면 항상 누군가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항상 거대한 공연장 한가운데서 산다는 기쁨에 충만해 있었고 오직 그것만이 발 하나 펴기 어려운 고시원 생활을 지탱해줬다. 대구였다면 볼 수 없었을 독특한 가게도 많았다. 방석을 깔고 앉아 물담배를 피우고 중앙의 호수에 꽂을 띄우며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던 참 이름이 길었던 술집은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하다. 아 홍대 곱창전골에서는 곱창을 안 판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러나 불과 1~2년 사이 홍대가 급격하게 변해간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에 바빠 자주 찾지 못하는 사이 홍대 놀이터에서 유수 그룹들이 빠져나갔다. 나는 사운드박스를 근래 들어 보지 못했다. 상인회는 장사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걷고 싶은 거리에서 자유롭게 노래하고 기타 치던 사람들에게 시간 제한을 걸었다. 10시가 되면 신데렐라처럼 차량 통행 제한이 풀리고 더 이상은 노래하고 춤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뿐인가, 건물주들의 횡포에 많은 좋은 가게들이, 구석구석 골목에서 배를 채워주던 가게들이 찻집이 공방이 하나둘 홍대를 떠나는 걸 지켜봤다. 이걸 유식한 용어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 한단다.

 

이 복잡한 젠뭐시기때문에 홍대는 색깔을 잃었다. 이제 홍대는 거리 사진만 찍어놓고 보면 여기가 홍대인지 가로수길인지 명동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됐다.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쏟아져 들어와 편리해진 점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의 홍대, 홍대 앞의 ‘2000년대를 상징하던 많은 것이 사라져가고 획일화돼 가고 있다. 정치권에서 유행하는 표현에 따르면 이제 올바른 거리가 되어가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러므로 나는 고민하게 된다. “앞으로 1020년쯤 시간이 흘러 그때 청년들이 물을 때,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 매장이 즐비한 삭막한 홍대가운데서 옛날의 홍대여 응답하라라고 물을 때 기성세대가 된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기억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어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기억할 만한 것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나가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시원 내 방의 진득하고 뜨끈한 장판 냄새만이 응답할 수 있다면 뒷세대는 무척 우울하고 서운하지 않을까. 아 덧붙여 응답하라 19XX까지는 남편 찾기게임이 통했지만, ‘응답하라 2015’를 배경으로 그 게임이 가능할까라는 물음도 던져본다. 답은 찾아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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